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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교를 결심한 한국교회의 성결교 지도자

‘말로 못하면 죽음으로’,
이 말은 한국의 무디라고 불린 부흥강사 이성복 목사님의 자서전 제목이다. 또한 이 고백은 이 목사님 가슴속에 불타는 선교 사명을 고백한 말이었다.

1. 성결교단 재건에 힘씀
1945년 이성봉목사는 만주 주문교회에서 해방을 맞고 "무너진 곳을다시 재건하라"는 주님의 음성을 듣고 귀국하여 이북에서 폐쇠된 성결교회 재건운동에 앞장서서 교회 재건 부흥집회를 인도하고 여러 곳을 돌며 무너진 제단을 다시 세우기에 힘썼다. 
그러나 얼마 안가서 38선이 막히고 교회탄압이 날로 심해지자 이목사는 46년 월남하여 남한에 성결교단재건에 앞장섰다. 

2. 순교를 결심
1950년 이목사는 서울 충정장로교회에서 집회를 인도하다가 25일까지 집회를 마치고 27일에 목포에 내려와 압해도에서 20일동안 집회를 열었다. 
이때 인민군은 정읍까지 쳐내려오고 있었다. 그래서 목포 성결교회의 동료목사는 이성봉 목사에게 피난가자고 했으나 거절하고 혼자 남아 금식하며 하나님께 기도했다. 
그러다 8월 2일 수요일밤 예배를 인도하고 나서 내무서원에 붙잡혀갔다. 이 목사는 잡혀가면서 순교를 결심했다. 그래서 온갖 고문을 당하면서도 신앙을 지키며 옥중에서 매일 찬송하고 기도했다. 

3. 임마누엘 특공대 조직
이 목사는 1954년부터 2년동안 625로 인하여 무너진 교회의 재건과 약소교회를 위한 "임마누엘 특공대"를 조직하여 순회집회를 인도하였다. 
서울,부산,인천,대구,대전 등 대도시를 돌면서 천막을 치고 대중집회를 할 때에는 수천명 혹은 수만명이 모여들어 대성황을 이루었다. 특히 이 목사는 농촌과 산골, 도서의 여러 지방을 순회하면서 집회를 인도하여 부흥의 기틀을 다지는데 주력했다. 
또 그는 전후방의 장병들을 찾아가서 복음을 전하고 나환자들도 자주 돌아보고 격려 위문했다. 소록도의 갱생원 여수의 애양원, 대전의 애경원, 부산의 상애원, 인천의 소생원, 금천의 성애원, 창년의 소혜원 등 그의 발길이 닿지 않은 곳이 없었다. 
한편 1955년 신촌교회를 개척하였다. 1959년 이목사는 N.A.E.대표로 도미하여 약 8개월동안 워싱턴 뉴욕 샌프란시스코 필라델피아 등 각처를 순회하면서 집회를 인도하였다. 

4. 1일 1교회 순회집회와 소천
1961년부터 1963년 사이에 1일 1교회 순회집회를 시작한 이목사는 408개 교회를 순회하였다. 이목사는 세상을 떠나기 10일전까지 단을 지켰으며 1965년 7월 성결교 합동총회에서 마지막 설교를 하였고 1965년 8월 2일 별세했다. 

유해는 청주 한국도자기 김동수회장(세째사위) 가족묘지에 사돈되는 김종호장노 내외 묘 옆에 부인 이은실 사모와 나란히 안치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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